주기도문 #5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마태복음 6:11)라는 구절 안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오리게네스
초기 기독교 교부 중 하나인 오리게네스는 주기도문을 깊은 알레고리적, 영적 시각에서 해석했습니다. 그는 "양식"을 단순한 육체적인 음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영적 양식으로 보았습니다. 오리게네스에게 있어서 "일용할 양식"은 인간의 영혼을 매일 양육하는 성경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양식"이 결국 성찬의 "그리스도의 몸"을 가리킨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신앙인은 매일 영적 양식을 위해 하나님께 의존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어거스틴
서양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한 신학자인 어거스틴은 "일용할 양식"에 대해 물질적 필요와 영적 필요를 모두 포함하는 균형 잡힌 해석을 제시했습니다. 어거스틴은 "일용할 양식"이 단순히 육체적인 음식을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영혼을 위한 영적 양식이기도 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양식이 신체를 지탱하는 것처럼, 그리스도, 즉 "생명의 빵"이 영혼을 지탱한다고 보았습니다 (요한복음 6:35). 어거스틴은 또한 "오늘"과 "일용할"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우리는 매일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매일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 기도를 통해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 모두에 대한 의존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마르틴 루터
16세기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 구절을 보다 실용적이고 목회적인 관점에서 해석했습니다. 루터는 그의 소교리문답에서 "일용할 양식"이란 단순히 음식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모든 필요를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에는 의복, 주거지, 건강, 일, 가족, 그리고 좋은 정부 등이 포함됩니다. 루터는 하나님의 보살핌이 일상 생활의 모든 측면을 포괄한다고 강조하면서, "일용할" 양식이란 필요한 만큼의 충분한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루터는 이 기도가 단순히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하나님께 의존하고, 하나님께서 각자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는 기도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인간이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공급을 경험하고, 이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신실함을 신뢰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존 칼빈
스위스 개혁자 존 칼빈은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의 주권적인 공급을 인정하는 기도로 해석했습니다. 칼빈은 이 구절을 통해 인간이 모든 생필품과 영적 필요를 하나님에게 의존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일용할 양식"이란 말이 하나님의 지속적이고 신실한 보살핌을 나타낸다고 강조했으며, 모든 양식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의해 공급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칼빈에게 "일용할"이란 단어는 단순히 매일 음식을 공급받는 것을 넘어,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며, 하나님께 대한 깊은 의존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신뢰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매일 필요한 만큼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독일의 신학자이자 순교자인 디트리히 본회퍼는 "일용할 양식"을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신뢰를 표현하는 기도로 해석했습니다. 본회퍼는 주기도문을 특히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중요한 표현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전쟁, 가난, 박해 중에서도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급을 믿고 의지하는 행위라고 설명했습니다. 본회퍼는 또한 "일용할 양식"을 성찬과 관련지어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영적인 양식임을 강조하며, "일용할 양식"이란 말이 단순히 육체적인 음식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리스도와의 깊은 교제를 통해 영혼을 채우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신학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리라는 신뢰를 표현하는 기도라고 말합니다.
현대 신학자들
20세기와 21세기의 해방 신학자들 및 사회 윤리학자들은 "일용할 양식"을 정의하는 데 있어 사회적, 경제적 차원에서 해석을 확장했습니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즈와 레오나르도 보프와 같은 신학자들은 "일용할 양식"을 개인적인 기도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변화를 위한 중요한 촉구로 보았습니다. 이들은 이 기도가 단지 물리적 양식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불평등과 빈곤을 해결하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기도라고 주장했습니다. 구티에레즈는 "일용할 양식"을 단지 개인의 영적 필요를 넘어서, 모두가 평등하게 양식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을 위한 기도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기도할 때, "일용할 양식"이란 기도가 단지 개인적 필요를 채우는 것뿐만 아니라, 세상의 불평등을 극복하고, 경제적, 사회적 정의를 이루는 일을 촉구하는 의미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결론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구절은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신학적 해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오리게네스의 영적 양식 해석부터 어거스틴의 물질적·영적 양식의 균형 잡힌 이해, 루터의 실용적인 해석, 칼빈의 하나님의 주권 강조, 본회퍼의 고난 중 신뢰하는 기도까지, 이 구절은 인간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도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매일 우리의 삶을 지탱하시는 분임을 인정하며, 우리의 물질적, 영적 필요를 충족시키시리라는 믿음을 표현합니다. 또한, 이 기도는 사회적 정의와 형평성을 추구하는 기도로서, 하나님의 공급을 요청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웃을 사랑하며, 모든 이가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을 다하는 기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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